2014년 1월 27일 월요일

일본 인기 만화작가들의 우상 그들이 말하는 드래곤볼 (드래곤볼의 위엄)


일본인기만화작가들의 우상 그들이 말하는 드래곤볼 (드래곤볼의 위엄)





아오야마 고쇼(靑山剛昌) - '명탐정 코난', '검용전설 야이바', '매직쾌두' 작가

"드래곤 볼" 을 보는 중엔 참 내 자신에게 여러가지 신기한 점 을 발견하게 된다.
첫장을 넘길 때 부터 "드래곤 볼 의 세계"에 매료되기 시작해
그 시간만큼은 어떤 다른 것 도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그야말로 소년으로 돌아가는 기분, 그 자체이다.
그리고 "드래곤 볼"의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난 후엔
어린 아이처럼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 하며 두근거렸고
"드래곤 볼" 신간이 나올 때 면 또다시 어린 아이처럼 두근거리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드래곤 볼" 은 누구나 인정하는 가장 "만화다운 만화"이며,
20세기 일본에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만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와츠키 노부히로(和月伸宏) - '바람의 검심', '무장연금' 작가

삐죽삐죽 선 머리에 여의봉을 매고 근두운을 타던 소년.
언제나 "드래곤볼"은 제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빠지게 하는, 빠질수밖에 없던 그런 만화 였습니다.
드래곤볼의 등장인물 이라던가 스토리, 배경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정말 배울점이 많았던 만화였죠.
그렇게 "드래곤볼"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배울점을 찾다 보면 어떻게 이런 기막힌 캐릭터와 스토리가 떠올랐을까 하면서
저를 경악하게 만들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여전히 "드래곤볼"은 저의 만화에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드는 존재이며,
지금도 배울점 투성인, 만화가라면 누구나 본받아야 할 그런 만화 입니다.





타케이 히로유키(武井宏之) - '샤먼킹' 작가

"드래곤볼"은 정말 제게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하나 하나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제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부분은
"드래곤볼"은 드래곤볼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점 입니다.
다음에 이어질 내용으로 잠까지 설쳤던 소년 독자들에게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결과와
반전으로 언제나 감동을 자극시키곤 했습니다.
당연히 손오공들이 승리할 것 이라는 건 뻔히 알고 있었지만 드래곤볼을 읽고있는 도중에도
두근거리게 했던 그 시절은 아직도 제 기억에 똑똑히 남아있습니다.
손오공이 슈퍼 사이어인으로 변신하는 장면은 지금 꺼내어 봐도
그때의 그 전율이 제 몸속 깊히 파고 들어오는군요.
"결코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말자!!" 라는 다짐은 작가라면 누구나 직시해야 할 기본적인 사명이지만
그 기본적인 것은 제가 꼭 지키고 싶은 부분이며 그 다짐은 "드래곤볼"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은 미숙한 부분이 많지만 제 만화에 나름대로 만족할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인 듯 합니다.





오다 에이치로(尾田榮一郞) - '원피스' 작가

"크리링이 죽었다!!"
잊혀지지도 않는 어느 여름 날, 부 활동 합숙으로 머물러있던 민박에서, 누군가가 외치며 복도를 달렸다.
그 주의 점프에서 '드래곤볼'은 큰 전개를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한테 있어서는 현실의 어떤 뉴스보다도, 그것은 대사건이었다.
오공이 미지의 장소에 가면, "여기는 어디지?" 라고 함께 생각하고,
오공이 화가 나면 "네 놈들 용서못해!!" 라고 우리들도 외쳤다.
내 어린시절은 조금도 과장하지 않았으며, 정말로 이랬다.
내게 있어"드래곤볼"은 단지 만화가로써 존경스럽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내 인생을 바꿔버린 최고의 명작!! 아니 그 이상의 존재이다!!.





키시모토 마사시 (岸本 齊史) - '나루토' 작가

일주일 동안, 모두가 "드래곤볼"을 기다렸고, "드래곤볼"은 항상 공통의 화제가 됐죠.
날라리 녀석부터 여자아이, 심지어 학교 선생님들까지, 광범위하게 모두가 "드래곤볼" 얘기를 했어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렇게까지 모두의 즐거움으로써 자리잡았던 것이 여지껏 있었던가!
이 폭발적 인기는, 아마도 나의 주변 뿐만이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난 일이겠죠?
최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오공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법 같은 존재였구나" 라고.
지금, 손오공이란 소리를 듣고 누구나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것은, 이미 서유기의 손오공이 아니라,
"드래곤볼"의 이 마법 같은 존재의 손오공이 아닐까요?





스즈키 신야 (鈴木 信也) - '미스터 풀스윙' 작가

아직 미숙하지만 지금 점프에서 연재하며, 토리야마 선생님과 같은 레벨에 서보니,
다시금 선생님의 위대함을 깨닫게 됩니다.
정말 저에게 있어 선생님은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드래곤볼"만큼 매주 두근거리게 하는 작품은 없었습니다. 있을 리가 없죠.
왜냐면 신이니까. GOD이니까.
지금 저는 꽤 성인이 되었습니다.
매일 정신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으면, 그때의 두근거림을 잊어버릴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문득 불안해집니다.
"지금 아이들은 게임이다 학원이다 휴대전화다 해서 바쁜데,
지금도 만화를 읽으며 옛날 우리들처럼 두근거려줄까"라고...
그럴때 저는 "드래곤볼"을 다시 읽습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그래... 괜찮아! 봐, 지금도 몇백번이나 읽은 "드래곤볼"을
애들처럼 열중해서 읽는 내가 있는걸.
"드래곤볼"은 영원한 명작입니다.
그 두근거림은, 몇년이 지나도 절대 바래지 않고 항상,
예전의 소년이었던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으니까요.




사와이 요시오 (澤井 哲夫) - '무적코털 보보보' 작가

소년시절의 나에게, "드래곤볼"은 모든 것들 중에서 단연 최고였습니다.
"드래곤볼"을 읽을 수 있다면 다른 놀이는 전혀 안 해도 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가장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차에 튕겨 나가면서도
"드래곤볼을 다 읽을 때까진 절대로 죽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단순한 염좌였지만서도. "생'에 대한 최고의 집념은 "드래곤볼"이었습니다.
그것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성인이 되어 그 때를 되돌아보면 "드래곤볼"은 나의 90%를 차지하고 있었구나... 라고 느낍니다.
"드래곤볼"이 없었다면 무지 지루한 소년시절을 보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드래곤볼" 그리고 "토리야마 선생님".





무라다 코스케(村田 雄介) - '아이실드21' 작가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는 만화책을 사주신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TV만화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조금이라도 접해볼 기회가 있던 만화가, 친구가 가지고 있던 단행본 '드래곤볼'.
더도 덜도 말고, 제가 아는 소년만화는 '드래곤볼' 밖에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 주위에서 "네 그림, 드래곤볼이랑 똑같잖아"
라는 말을 듣고는, 의식적으로 토리야마의 작품을 멀리한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쯤이면 토리야마의 터치도 잊어버렸겠지라고 생각해도, 연재가 시작해서 보면
금방 '드래곤볼의 흉내'라 말한 때의 터치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이제는 굴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뿌리에 얼마나 깊이 '드래곤볼'의 영향이 박혀져 있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저는 토리야마 선생님의 그림을 이상으로 삼아,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드래곤볼'을 읽고 만화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항상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변화시킨 이 명작은 어느 시대에서도 절대로 통할 테니까.





쿠보 타이토 (久保 帶人) - '블리치' 작가

"카에하메파와 도돔파, 어느 쪽이 셀까?"
이것이, 나의 '드래곤볼'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아직 초등학생.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이런 테마로 열성적인 토론을 벌였다.
나에게 있어서 '드래곤볼'은 "악역이 무진장 멋진 만화"이다.
주인공 쪽이 싫다는 의미가 아니다. 악역이 좋았다는 것이다.
전술한 타오파이파이를 비롯하여, 차오즈, 피콜로, 라딧츠, 베지터, 낫파, 자봉,
도도리아, 기뉴, 리쿰, 그리고 물론 프리더도...
이름을 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악역 중에서 싫은 녀석을 열거하는 편이 어려울 정도이다.
악역은 강하고, 무섭고, 그리고 멋지지 않으면 안된다. 절대로.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주입시킨 것은, 틀림없이 이 '드래곤볼'이었으며,
내 만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지금도 '드래곤볼'을 펼칠 때마다, 그런 생각을 새롭게 한다.
그리고 베지터를 넘길 때면, 여전히 난 그 때와 같은, 오싹함을 느낀다.





야부키 켄타로 (矢吹健太) - '블랙캣' 작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짬이 나면 그림만 그렸다.
항상 정해진 것은 오공과 베지터, 그리고 프리더... 가장 좋아했던 "드래곤볼"의 캐릭터였다.
어느 정도 안보고 캐릭터를 그릴 수 있게 되면, 이번에는 오리지널의 천하제일무도회 만화를 그려,
오공과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싸우게 했다.
반드시 우승은 오공이었다. 생각해보면 만화의 그림체, 표현방법, 칸 나누기 등은 전부 "드래곤볼"로부터 배웠다.
"드래곤볼"이 없었다면 나는 만화가가 되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드래곤볼"은 무엇보다 나에게 '만화를 그리는 즐거움'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로부터 8년 가까이 된 지금도 나의 작업실은, 그 때 모은 오공들의 피규어로 장식되어 있다.
나의 만화를 그리다 지치면, 노트의 한 구석에 토리야마 선생님의 그림으로
셀과 프리더를 그려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두근거리며 힘이 솟는다.
초등학교 때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드래곤볼"의 팬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계속해서 만화를 그려나갈 것이다.





카노우 야스히로 (? 恭弘) - '프리티 페이스' 작가

"우와, 엄청 예쁘다~"
아름다운 배경. 그리고 그 안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귀여운 소년, 오공.
연재 제1화, 1페이지의 칼라에 눈을 빼앗겨, 잠시동안 내 안에서 시간이 멈춰 있었다.
만화라 하는 것은 작가의 머리 속 이미지의 구현화입니다.
드래곤볼 전편을 통해 느낀 것은,
토리야마 선생님의 머리 속에서 태어난 이미지라는 것이 얼마나 커다랗고 풍부하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끝이 없는. 이것은 제가 만화를 그리는 입장이 되어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풍부함 위에 빈틈이 없는, 그러기 때문에야 말로 연재가 끝나 세월을 거친 지금에도 빛이 바래기는 커녕
오히려 신선한 매력이 넘쳐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나를 사로잡는, "드래곤볼"은 그러한 작품입니다.





이토 미키오 (いとう みきお) - '노르망디 비밀 클럽', '그라나다' 작가

무슨 말을 쓴다 해도 결국엔 부연설명일 뿐입니다.
재미있으니까 좋다, 한명의 팬으로써의 결론은 결국 이 한마디라고 생각합니다.
팬의 입장에서 보면 재미있고, 만화가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운...
제게 있어 "드래곤볼"은 그런 만화입니다.





스즈키 나카바 (鈴木 央) - '라이징 임팩트', 'Ultra Red' 작가

왜, 잡지 한 권 읽는데 그렇게까지 시간이 걸리냐고?
간단하다. 드래곤볼이 너무 재밌으니까.
점프 자체 읽는 건 1-2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이 만화만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매주 몇 십번이나 음미하는 듯 반복해 읽으니까.(한 컷의 구석부터 구석까지)
프리더가 최종형태로 변신한 때에는 학교를 빼먹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정도로 심플하고, 멋지면서, 강하고, 압도적인 공포감을 느끼게하는 디자인.
그리고 그것을 깨끗이 그려내는 토리야마 선생님의 힘을, 아이 때의 나도,
지금 만화를 그리고 있는 나도 계속해서 동경해오고 있다.





사쿠라 켄이치 (佐倉ケンイチ) - '드래곤 드라이브' 작가

저는 어릴 때부터 토리야마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매주 점프를 살 돈이 없었던 저는, 당시 100엔으로 먹을 수 있던
근처의 오코노미야키 가게에 점프를 보러 갔습니다.
친구와 조금씩 용돈을 나눠 오코노미야키를 주문하고는 아주 필사적입니다.
오코노미야키는 제쳐놓고 "드래곤볼"에 열중하느라고요.
너무나 "드래곤볼"이 좋은 나머지, 마음에 드는 페이지의 장면을 잘라(지금 생각하면 정말 터무니 없는 짓을 했군요)
노트에 붙여놓고, 열심히 해설을 덧붙여 쓰거나 했었죠.(것도 캐릭터별로)
다시 생각할수록 다시 읽을수록, 제가 소년만화를 목표로 하게 된 계기는 역시 "드래곤볼"입니다.
너무 좋아요! "드래곤볼"!





타네무라 아리나 (種村有菜) - '만월을 찾아서', '신풍괴도 잔느' 작가

"드래곤볼" 세대... 저는 정말로 그 중 하나입니다.
점프를 사기 시작한 것이 딱 드래곤볼이 연재 개시됐던 무렵입니다.
오빠와 함께 매주 전개를 두근거리며 기다렸었고, 특히 애니, 게임 역시
지금 생각하면 무지 좋아했었구나라고 느낍니다.
저는 특히 부르마가 너무 좋았어요, 물론 오공도!
둘의 콤비가 마음에 들어 같이 나오지 않더라도 가끔 만나거나 이야기하는 신이 나오면
너무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캐릭터의 사랑스러움, 스토리의 매력, 절묘한 전개, 기운찬 일러스트, "드래곤볼"은 만화 중의 만화! 진수입니다!!
앞으로도 한 명의 팬으로써, 작가의 말단으로써, 존경을 담아 사랑하고 싶어요!!



히라노 코타 (平野耕太) - '헬싱', '건 매니아' 작가

가메하메파는 죽어라 연습하면 나온다.
마음 속으로 그렇게 믿으며 가메하메파 포즈를 마치 기계인형처럼 반복해서 취하고 있는 반친구들을 무시하고,
나는 레드리본군이 세계를 정복하는 그림을 그린다.
"레드리본군과 나"
나는 남쪽의 섬에서 부르마랑 런치랑 영원히 함께 산다.
"남쪽 섬과 나와 부르마와 런치"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그런거 말고 오공이나 피콜로를 그려달라고 하지요.
알았다며 야무챠가 낭아풍풍권을 일방적으로 피콜로 대마왕에게 먹여 천하제일무도회를 10연패하는 장면이나,
오공이 큰원숭이로 변신하여 키워준 할아버지를 짓밟아버리는 장면을 그려주면 무지하게 미움받았습니다.
그러던 제 학창시절...
저의 학창시절은 그렇게 "드래곤 볼"이라는 깊은 바다 속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출처-츄잉 드래곤볼 게시판 공지글

왕가위 <화양연화> 내러티브 분석 영화리뷰


 
왕가위 <화양연화> 내러티브 분석 영화리뷰
 
 
 
 
 
 
 
 
 
 
 
 
 
 
 
 
 
 
<화양연화>는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시대의 사랑과 불륜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러티브를 전달함에 있어서도 묵직하고 굉장히 느린 전개를 고수하였다. <화양연화>에서는 주인공들은 있지만, 주인공과 반대적 입장인 서로의 남편과 부인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antagonist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서로의 남편, 부인이 아닌 실제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보수적 홍콩사회의 모습 그 자체라는 것을 드러낸다.
 
남자와 여자의 애정관계는 인류 역사에서 지금까지 다루어지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문제가 역사와 시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문제가 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화양연화>의 홍콩사회는 주변의 사람들끼리 서로에 대한 관심이 많고,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륜을 저지르는 서로의 남편, 부인은 아예 홍콩을 떠나 다른 곳에서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홍콩사회에서의 불륜은 사람들 사이의 민감한 가십거리이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정해진 관계를 고수하고, 천생배필의 사상이 아직 사회 전반으로 남아있던 시기이다.
 
이런 사회에서 주인공인 ‘차우’와 ‘리춘’은 마음 속으로는 복잡하고 미묘한 사람의 감정을 느끼는 ‘다면적 인물’들이지만, 사회의 규범을 위해 ‘평면적 인물’임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항상 먼저 다가가 사건을 움직이는 인물은 남자인 ‘차우’이다. 여기서 그들은 항상 ‘가상의 연기’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가상의 연기’를 통해 내면에 숨겨진 ‘다면적’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와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를 간접적으로 서로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건은 서로의 남편, 부인의 불륜-이를 눈치 챈 주인공들의 갈등-서로에 대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별 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눈치 챌 때 알아낸 서로의 남편 부인의 선물은 불륜에 대한 ‘지시적 의미’를 나타내는 장치이고, 이후에 등장하는 ‘국수’, ‘무협소설’, ‘전화’, ‘연기’ 등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함축적 의미’를 제시한다. 이러한 것들이 앙코르와트의 유적지에 비밀을 묻어놓는 ‘이데올로기(전설)’로 이어지는 결말로 나타난다. “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아주 사랑했지만, 당시 사회적 규칙을 지켜야한다는 소심함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하나의 전설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실제 이야기가 진행되는 기간은 매우 짧은 몇 주간의 일이다. 그리고 몇 주 동안에도 아주 잠시동안만 서로를 마주했을 뿐이다. 그 외의 시간은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아련한 감정일 뿐이다. 아련한 감정을 극대화 하기 위해 서로 혼자있는 시간에 대해 길고 잔잔하면서도, 붉은 색 배경의 방을 통해 마음 속 “정열”을 나타내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영화 리뷰 - 복수의 끝은 복수, 파괴의 끝은 파괴)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영화 리뷰 - 복수의 끝은 복수, 파괴의 끝은 파괴)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거치며 사람들은 사회를 배우고 성장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을 배려하는 윤리에 대해 배우며 자라게 된다. 그런데 만약 태어나서부터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라고 배운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사람은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소시오패스(sociopath)적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보편적인 면도 있지만, 각각 가족을 이루고 사는 형태의 삶을 살기 때문에 각각의 어둠과 아픔 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감독이기 때문에 꼭 보편적인 삶의 기준과 대중적인 요소를 가진 영화를 만들어야한다는 지침은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기존의 근대사회에서는 영화라는 매체가 기술적 한계 등을 이유로 아직 다양한 시도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영화에서 출발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그런 엄격한 헐리우드의 규칙을 지키면서도 결국 자신의 목소리를 냈고, 수많은 감독이 있었지만, 그중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장 뤽 고다르도 최초에는 자신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중함을 느끼고 싶어하고 그만큼 이미 만들어진 규칙에 대해 도전하는 성향이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도움받아 마땅할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는 비정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함은 법이나 공권력을 통해 잘 해결이 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개인 대 개인의 해소방법을 찾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복수’이다. 기존의 감독들은 복수에 대해 (주인공의 고난-악당에 대한 복수)의 구조였다면, 이 영화는 고난-복수-고난-복수 구조의 반복이다. 영화의 주제는 복수를 하는 개인이 아닌, ‘복수’ 그 자체인 것이다. 기존 복수극의 형식을 파괴하고, 엄연히 법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법 없이 복수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고대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모습을 모습을 보여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장르를 계속해서 파괴하는 형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파괴로 인해 인간의 보편적 규범까지 파괴된 현실이 영화로 그려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영화를 불편해 할 수 밖에 없다. 
  
 


2012년에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쟝고>는 기존 서부극을 포스트 모더니즘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기존 서부극의 요소는 (무법시대-서부 개척지-보안관-백인)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 요소들을 파괴하였다. (노예제도-미국 남부 노예농장-현상금 사냥꾼-흑인)의 구조로 모든 것이 바뀌어있다. 서부극과 공유하는 것은 시대적 연도 말고는 거의 없다. 파괴를 거듭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소재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것에는 성공했다. 그런데 이 파괴가 계속해서 심해질 경우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작품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1차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이성과 현실을 거부하던 “다다이즘”이 결국 모든 것을 거부하여 도착한 곳이 현실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초현실주의”인 것을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극단에 이르지않게 하는 팽팽한 긴장상태가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팬더 너무 귀엽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초현실주의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시공간(3차원)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다른 차원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하고있고, 중력이 빛을 휘게 만들기도 하며, 아메리카 대륙은 콜럼버스 이전에는 지도에 없었다. 중국의 팬더(panda)곰은 1869년까지, 고릴라(gorilla)는 1902년까지, 대왕오징어는 2004년까지 모두 신화 속 동물이었다고 한다. 
 
 


가족의 탄생(2006, 김태용)-여성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의 모습 [영화리뷰]

가족의 탄생(2006, 김태용)-여성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의 모습 [영화리뷰] 
  
 
 
  영화 <대부>의 시리즈를 보면 미국에 이주하여 정착한 ‘이탈리아계 사람들’의 애환을 다루면서 그들이 왜 결속할 수 밖에 없었는지, 서로를 패밀리라고 부르며 같은 이탈리아계 사람들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은 마피아 조직으로, 폭력과 암살 등을 일삼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만큼 그들에게 혈연의 개념은 서로의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주 1세대인 ‘비토 꼴리오네’의 시대는 서로에 대한 혈연과 ‘이탈리아계 사람들’끼리의 결속이 중요한 이슈였다. 
그러던 중 2세대인 아들과 딸이 태어나고, 3번째 아들인 ‘마이클 꼴리오네’가 2대 대부가 된다. 미국이라는 다민족 국가에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미국 정치인, 경찰, 유대인 사업가, 쿠바의 정치인 등과 사업관계를 맺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혈연을 같이 한 형인 ‘프레도 꼴리오네’가 자신의 의도에 맞지않고 방해가 되자, 가차없이 제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혈연은 무너지고, 사업(Business)만이 남아버린 비정한 현대의 비극을 범죄와 함께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대부>시리즈의 묘미이다.
1970년대의 미국을 담은 이 영화의 모습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우리나라도 혈연 중심의 가족 문화가 많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부>는 남성 중심의 혈연가족 문화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인 기존의 시각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대의 대한민국의 사정은 어떠할까? <가족의 탄생>에서는 서로 다르게 보이는 3개의 에피소드를 연결시켜 한 세대 간의 가족 개념의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남성이 모든것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과거의 모습에서 실제로 무기력하지만, 기존 이데올로기로 인해 강한 척하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부장제의 핵심인 남성 가장의 부재로 인해 가장의 역할을 하게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은 남성의 조력자가 되고, 아무에게나 시선을 주는 행동을 삼가야할 윤리를 지키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사회활동을 하지 못했던 여성들이 최근에는 여성이 필요한 직종의 증가로 사회에 진출하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기존의 가족구조대로라면 여성은 남성의 부양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남성 없이는 살 수가 없어야 되는데, <가족의 탄생>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성이 가족생활로 인해 사회생활을 포기하라는 압력에 대해 저항하는 경우도 예전보다 늘어났다. 혈연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사람들끼리 이룬 가족이 새롭게 탄생할 조짐을 보이며 영화는 끝나게 되는데, 비혈연, 여성중심의 가족이 과연 불행한 현대 가족의 비극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오히려 이런 고난 속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여성이 무책임한 말과 행동으로 남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낫지는 않은가? 라고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루마니아의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에서는 독재적 사회주의 사회에서 오는 폭력에 희생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주의는 모든 것을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체제이기 때문에 인구도 중요한 통제대상이다. 출산 장려 정책으로, 피임을 못하게끔 콘돔의 판매를 금지시킨다. 그리고 낙태도 불법이다. 이 상황에서는 ‘원치 않는 임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여대생은 결국 불법적으로 낙태를 한다. 남성은 무심하게 정치를 하고, 임신을 시키고 모른 척해도 이런 고민의 당사자가 되지 않음을 꼬집고 있다. <가족의 탄생>에서 결국 아이들을 키워낸 것은 피가 섞이지 않은 여성이다. 한 세대를 키워낸 여성을 등지고서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14년 1월 25일 토요일

히스레저 사망 6주기 다크나이트(dark knight) 조커(joker)에 담긴 3명의 남자 [영화 리뷰]

히스레저 사망 6주기 다크나이트(dark knight) 조커(joker)에 담긴 3명의 남자 [영화 리뷰]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는 영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응을 만들어냈다.
다크나이트 라이지스가 완결편으로 손색이 없었음에도, 2편인 다크나이트에 밀리는 이상한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1974년 대부2 에서 최초로 '본편보다 나은 속편'으로 아카데미 등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지만,
이건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맛보기로 보여준 현실적 고담시와 배트맨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그 중심에는 크리스챤 베일의 배트맨도 큰 몫을 하지만,
역시 그에 반대급부인 조커(joker)의 히스레저의 혼신의 연기와 사망이 더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히스레저는 조커를 연기하기 위해 3명의 남자 캐릭터를 참고했다고 한다.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지만 조커로 기억되는 히스레저, 조커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먼저, 다크나이트의 조커의 모습을 보면, 몸 동작과 말투 이건 어떤 사람의 것일까??

 
                                                                                            
가수 톰 웨이츠의 영상과 비교해보자 (1분 30초 정도부터 등장)
어떻게 보면 소름이 돋는다ㅋㅋㅋ


둘째로 조커의 폭력성은, 어디서 온것일까?
 
 
 
이것은 시계태엽 오렌지의 말콤 맥도웰을 비교해보자
뭔가 보통의 왜소한 체격에서 뿜어나오는 저 폭력성은 딱 조커의 폭력과 비슷해보인다.
 
  마지막으로, 다크나이트 이전에 제작된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의 잭 니콜슨이 맡은 조커를 비교해보자
먼저, 다크나이트의 조커이다. (3분 40초)


줄에 거꾸로 매달려 중력에 쏠리는 영상과 광기와 중력이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연출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팀 버튼의 조커의 최후와도 묘하게 비슷하다. (3분 40초)

 현재까지도 DC코믹스를 먹여살리고 있는 배트맨과,
그의 반대급부인 악당 중 인기 최고인 조커

배트맨 중심으로 리부트된 DC의 뉴52 그래픽 노블과 더불어
앞으로 배트맨 시리즈는 계속 팔릴 예정인데

어떤 배트맨과 조커가 나올지 기대된다.

그리고 다음에 조커 역을 맡게 된 배우에게는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그만큼 위험한 캐릭터이다!!)

마지막으로 검열이 심하던 시절 코믹스의 조커 흑역사...ㅋㅋㅋㅋㅋ


조니 브래이크: 좋았어! 이번학기는 지난학기처럼 올D가 아니라 올A를 받았구나. 아빠가 자랑스러워하겠지!

조커: 하지만 니네 아빠는 그 성적표를 보지 못 할거야, 왜냐면 내가 빼앗을 거거든!

조니: 이봐!!
조니: *훌쩍* 아빠는 내가 성적표를 도둑맞았다는 걸 믿어주시지 않을거야. 이번에도 성적이 나쁘게나와서 보여주길 두려워한다고 생각할탠데!

조커: 하하 누군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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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린아이 성적표를 뺏고 만족감을 느끼는 사상 최악의 악당 조커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영화 리뷰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장르에 대한 새로운 개성을 불어넣은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20세기 영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스탠리 큐브릭’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둘의 작품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둘은 동시대를 살았고, 서로를 의식했다고도 전해진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99년에 작고하였기에, 더 이상 둘의 경쟁은 볼 수 없게 되어서 아쉬운 점이 있다. 아래의 표는 몇가지 대칭되는 작품을 비교해 본 것이다. 
 
 
스파르타커스(1960)
글레디에이터(2000), 블랙호크다운(2001)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에일리언(1979), 블레이드 러너(1982)
프로메테우스(2012)
시계태엽 오렌지(1971), 샤이닝(1980)
한니발(2001)
  
두 감독은 모두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 방식은 비슷한 듯 다른 라이벌 관계를 보이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사실주의’와 ‘완벽주의’를 추구한 감독이다. <스파르타커스>라는 영화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기도 하고, 전쟁 장면에서 동원된 엑스트라는 CG가 아닌 전부 실제 사람이었다고 한다. 반면 <글레디에이터>는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여 만든 검투사의 액션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영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를 추구하지만, 역사적 고증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블레이드 러너>는 미래의 LA 모습을 그려내는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서로 섞여버린 문화양식은 건축물, 인종, 언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타이렐사’의 건물은 피라미드의 모양이면서, 안은 고대 로마의 신전을 연상시킨다. 길거리 노점상에서는 한국어, 일본어가 혼용되며, ‘데커드’의 자동차를 터려는 작은 꼬마들은 독일어를 하는 거리의 작은 악당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기존 사람들이 말하던 “SF장르”적 특성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이었기에, 관객들에게는 굉장히 어렵게 받아들여졌다. 
 
 
장르영화 감독이 개인의 ‘작가주의’를 보여준 <블레이드 러너>는 최근 들어 <프로메테우스>와 <블레이드 러너 프로젝트>(2014 예정)를 통해 리들리 스콧의 다른 작품인 <에일리언>과 세계관의 통합을 시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에일리언 세계관의 기술제품, 안드로이드 제작을 한 ‘웨이랜드사’의 TED 강연 장면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의 ‘타이렐’이 실패한 ‘레플리컨트’(인조인간) 기술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기술을 옹호하는 내용도 있다. 
 
<블레이드 러너>는 SF장르이면서, 실제로는 여러 장르가 섞인 혼성장르이며, 이데올로기적으로는 ‘히피’와 ‘락’ 문화르 대변한 ‘사이버펑크’의 시초가 되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사이버펑크’ 영화의 모델이 되었고, 대표적으로는 ‘12 몽키즈’, ‘매트릭스’, 일본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이 있다. 같은 장르에서 전혀 새로움을 나타냈기 때문에 <블레이드 러너>는 순수하지 않은 현대의 장르문화를 대변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리뷰]프레드 진네만-하이눈(fred zinneman-High Noon)과 구조 속에 숨은 개인 Zaddicted

[영화 리뷰]
프레드 진네만-하이눈(fred zinneman-High Noon)과 구조 속에 숨은 개인 Zaddicted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 - high noon intro -> "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

미국의 서부는 동부에 비해 늦게 정착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개척 시기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사건의 배경 속 ‘케인’은 마을의 보안관으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결혼을 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그가 가진 보안관 공공의 의무는 끝이 났다.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개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가 5년 전에 체포한 살인범 ‘프랭크 밀러’는 보안관과의 개인적 악연을 빌미삼아 옛 범죄자 동료를 모아 응징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보안관’ 이라는 구조를 벗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이 마을의 문제에 신경 쓰지 않고 떠나도 좋다고 한다. 그렇지만, ‘케인’의 문제는 단순한 보안관과 범죄자의 세력 간 구조적 대결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근거들이 등장한다.
 


 
가장 크게 등장하는 2가지 근거는 결혼한 부인과 멕시코계의 옛 연인 ‘라미네즈’이다. 지금‘프랭크 밀러’를 처리하지 않으면, 후에 분명히 자신을 추격해 가족과 자신을 둘 다 위협할 것이란 자신과 가족의 안위 문제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서부극에서 맞대결을 피하는 남자는 자존심이 약하다는 남성적 구조로 최초에 인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면에는 ‘자신과 가족의 안위’라는 개인적인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한다. 
 둘째로는 멕시코계의 옛 연인 ‘라미네즈’이다. ‘라미네즈’는 살인범 ‘프랭크 밀러’의 연인이었다가, ‘케인’의 연인이 되었고, 이를 ‘프랭크 밀러’도 알고 있다. 그리고 두 남자가 각자의 길을 간 이후에는 ‘케인’의 직속 후임 ‘하비’의 연인이 되기까지 하였다. ‘프랭크 밀러’가 돌아오면 ‘라미네즈’는 분명 어떠한 방법으로든 불이익을 당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을 아는 ‘케인’은 ‘프랭크 밀러’를 그냥 돌아오게 할 수가 없는 입장이 된 것이다. 
 

개인적인 문제들을 짊어진 ‘케인’은 이것들을 확실히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문제의 시기로 돌아와 ‘보안관’이라는 공적인 구조를 이용한다. 그리고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안관’의 위치에서의 탁월함을 근거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 근거는 ‘프랭크 밀러’의 귀환이 그동안 ‘보안관’과 시민들이 만든 지역사회를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최초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케인’의 주장에서의 개인적인 면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케인’과 ‘프랭크 밀러’의 개인적인 문제라는 것을 아는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고있다. 

공공의 이유(구조적 이유)
개인적 이유
마을 지역사회가 다시 혼란스러워짐
자신과 가족의 생명 위혐, 옛 연인 위협


마을 사람들은 결론적으로 ‘케인’이 다시 돌아와 개인적인 문제로 마을에 분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지적하며 도와주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로인해 ‘케인’은 개인적 이유들(사적 문제, 공적 지위의 만료)로 인해, 공공의 목적까지 달성하기 곤란해지는 위기상황에 놓이게 된다. ‘케인’과 ‘프랭크 밀러’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다. 중세나 동양의 문화권에서의 집단주의 문화와 다른 개인주의 문화에서의 구조는 이렇듯 사회계약론에 의거해 ‘개인’과 ‘개인’들의 계약관계가 깨지는 순간 사회구조도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알프레드 히치콕의 금발 여배우 그레이스 캘리가 나온다.


* 하이눈이 데뷔작인 별거없는 부하1 악역으로 나온 배우 중 리 반 클리프Lee Van Cleef(잭 콜비역)는 다른 영화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이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 서부극 호흡을 맞추며 서부극의 대표배우가 된다.

*미국 대통령들은 하루 오전동안 보안관이 겪는 책임감과 의무감 등 다양한 심리적 요소가 담긴 이 서부극을 꼭 본다고 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서의 '나선'과 '점'의 구조(Alfred Hitchcock-vertigo)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서의 '나선'과 '점'의 구조(Alfred Hitchcock-vertigo)



 
<현기증>이란 영화는 역사가 깊지 않은 미국에서 오랜 전설과 도시적 욕망을 말하는 당시에 있어서 이색적인 스릴러물이다. <현기증>을 이끄는 형식적인 구조는 ‘나선’과 ‘점’ 구조이다. <현기증> 의 형식적 구조를 파악할 때 보통은 1차적인 구조로만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그 예에는 나선구조의 소용돌이 모양,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추락의 모습이다. 이러한 1차적 구조로만 보았을 때도 영화의 전체적인 내러티브와 연계되는 지점이 많기 때문에, 좋은 분석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하지만, 1차적 구조로의 분석을 넘어 숨은 형식구조들을 파악하면, 영화가 보여주는 형식주의적 장치들을 넘어서 영화 전체적으로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나선’과 ‘점’의 구조를 영상의 형식 측면에서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직접적으로 보여진 ‘나선’구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나선’ 구조 안에 들어가 있을 때 이를 깨닫기 어렵다는 사실을 차량 추격 장면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스카티’가 ‘매들린’의 뒤를 따라 도로를 주행할 때, 자신의 집에서 출발해 매들린을 쫓아 계속해서 도시 주변을 원을 그리며 도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영화의 의미와 맞물려 ‘나선’의 미궁에 빠진 ‘스카티’의 상황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영상의 형식에서 본 ‘점’ 구조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추락의 이미지를 ‘점’의 구조로 볼 수 있다. ‘점’은 하나로 모이는 모양을 나타낸다.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중심점이 있다. 추락의 이미지는 중심점으로 향하는 행동이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V”의 이미지 역시 아래쪽으로 향하는 중심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나선형을 측면에서 본 모습으로 연상해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토네이도를 보는 경우, 토네이도의 측면만을 볼 뿐이다. 이를 관객인 일반인들은 문제의 중심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형식적인 장치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본다면, ‘주디’가 추락한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의 이미지는 문제의 중심점을 통과한 이후의 상황이고, 이야기의 끝을 나타내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나선’과 ‘점’의 구조를 내용의 형식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내용적으로 ‘나선’의 구조는 이야기의 주변부이고, ‘점’의 구조는 이야기의 중심점 혹은 절정을 나타낸다. 이런 구조가 반복되면서, 영화에서의 사건들이 하나씩 시작과 종료를 반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 도입부의 옥상 추격 장면에서 범인을 쫓는 것은 ‘나선’의 주변을 맴도는 행동이고, 경관이 떨어지면서 중심점에 다다른 후 고소공포증을 얻으며 첫 번째 사건이 종료한다. 그 다음에 ‘매들린’이 물에 뛰어드는 장면과, 시계탑의 추락장면 등에서 이런 시작-종료의 구조는 반복된다. 여기서는 극을 진행하는 인물인 ‘스카티’의 성격도 ‘나선’에서 ‘점’으로 떨어지는 연결에 한 몫을 한다. ‘스카티’는 경찰 출신으로 사건의 주변부인 ‘나선’ 부분에서 ‘점’을 향해 나아갈 방향성을 가진 인물이다. ‘엘스터’가 의도적으로 이용한 ‘스카티’의 고소공포증 이전에 이미 그는 사건을 수사하도록 설정된 형식적 도구였던 것이다. 
 



  이야기의 도입에서 결말에 다다르는 몇 개의 사건들에서 점점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나선’의 소용돌이 주변에서, 문제의 중심인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를 가진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주인공이 가지는 문제의 중심을 직면해도 뭔가 해소되지 못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현기증>의 주제의식은 “현대사회는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여도 해결하지 못하는 갈증”을 가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현기증은 고소공포증 같은 표면적 증상에서 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호한 세상에서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거대한 내면의 실체에 직면했을 때 오는 것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서의 '나선'과 '점'의 구조(Alfred Hitchcock-vertigo)